약사가 설명한다. "이건 식후 삼십 분, 하루 세 번이고요. 이건 아침에만 드세요."
그 자리에서는 고개를 끄덕인다. 어렵지 않은 이야기다.
그런데 집에 와서 약 봉투를 펼치면 흐릿하다. 아침에만 먹는 게 어느 쪽이었더라.
기억력이 나빠졌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그 사이에 일어난 일은 조금 다르다.
붙잡고 있던 손을 놓친 것에 가깝다.
약국을 나선다. 신호등을 건넌다.
가는 길에 아는 얼굴을 만나 인사를 나눈다. 버스에서는 창밖을 본다.
집에 닿기까지 이십 분쯤이 흐른다. 그 사이 머릿속에는 다른 것들이 계속 들어온다.
방금 들은 복용법은 그 새 것들에 자리를 내주고 밀려난다.
이것이 흔히 말하는 간섭이다. 새로 들어온 정보가 먼저 있던 정보를 덮는다.
나이가 들면 이 밀림이 더 자주 일어난다. 끼어드는 것을 막는 힘이 함께 약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용한 약국에서는 멀쩡하던 것이, 시끄러운 길을 지나며 흐트러진다.
한 가지 짚어 둘 것이 있다. 이런 일은 나이와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일어난다. 다만 잦아질 뿐이다.
비슷한 순간은 하루에도 여러 번 온다.
①병원에서 들은 주의사항을 집에 와서 되짚을 때
②소개받은 사람 이름 서넛을 자리 옮기고 나서 부를 때
③마트에 가서 사려던 것 중 두 가지를 빠뜨릴 때
세 경우 모두 들은 자리와 쓰는 자리가 떨어져 있다. 그 사이의 시간이 문제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는 알았는데"라는 말이 나온다. 실제로 그 자리에서는 알고 있었던 것이 맞다. (글 출처 : 질병관리청 국가건강정보포털 기억력·인지기능 안내)
머릿속에 잠깐 띄워 둘 수 있는 양은 생각보다 적다.
연구자들은 대체로 서너 덩어리 정도로 본다. 열 개, 스무 개가 아니다.
그러니 약 세 종류에 복용 시각과 주의사항까지 겹치면, 담을 수 있는 양을 이미 넘어선다.
못 외우는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 외우려 한 양이 많았던 것이다.
장을 볼 때도 같은 일이 벌어진다. 여덟 가지를 사려고 나섰다가 두 가지를 빠뜨린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덩어리'라는 말이다. 낱개가 아니라 묶음 단위로 센다.
전화번호를 세 자리씩 끊어 읽는 이유가 그것이다. 열한 자리를 낱개로 세면 넘치지만, 세 덩어리로 묶으면 담긴다. (글 출처 : 질병관리청 국가건강정보포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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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로 외우지 말고 묶는다
담기는 양을 늘릴 수는 없다. 대신 덩어리 수를 줄일 수는 있다.
방법은 묶는 것이다. 서로 관계없어 보이는 낱말도 이야기로 엮으면 하나가 된다.
장 볼 목록이 두부, 시금치, 달걀, 참기름이라면 낱개로 넷이다.
그런데 "오늘 저녁은 시금치 무침과 계란찜"이라고 정하면 덩어리가 하나로 준다.
약도 마찬가지다. "노란 것은 아침, 흰 것은 세 번"처럼 색과 횟수를 붙여 두면 따로 외우지 않아도 된다.
이것을 연상이라 부른다. 요령처럼 들리지만 실은 기억이 원래 작동하는 방식이다.
우리가 옛일을 오래 기억하는 것도 그것이 낱개가 아니라 장면으로 묶여 있기 때문이다.
묶는 방법은 몇 가지가 있다.
①장면으로 묶기 — 낱말들을 한 장면 안에 놓아 본다. 저녁 밥상 위에 재료를 늘어놓듯이.
②순서로 묶기 — 하는 차례대로 이어 본다.
아침에 먹는 것부터 밤에 먹는 것까지.
③소리로 묶기 — 첫 글자를 따서 한 마디로 만들어 본다.
셋 중 어느 것이 편한지는 사람마다 다르다. 익숙한 방식 하나만 정해 두면 충분하다.
한 가지 더 있다. 떠올릴 때는 소리 내어 말해 보는 편이 낫다. 눈으로만 훑으면 남지 않는다.
주차한 층을 "삼층, 기둥 옆"이라고 소리 내어 말해 두면 남는 이유와 같다.
⚠️다만 안전이 걸린 일은 다르다. 약 복용법과 중요한 약속은 반드시 적어 둔다. 외우기 연습은 실수해도 괜찮은 일에서만 한다.
두칭의 순삭단어는 지금까지 이야기한 일을 그대로 옮겨 놓은 훈련이다.
낱말 여러 개가 화면에 나온다. 잠깐 보고 나면 사라진다.
그리고 바로 답하지 않는다. 잠시 시차를 둔 뒤에 무엇이 있었는지 떠올린다.
이 '시차'가 이 훈련의 핵심이다. 실제 생활이 그렇기 때문이다.
약국에서 듣고 집에 와서 떠올린다. 장 볼 목록을 정하고 마트에 가서 떠올린다.
듣자마자 쓰는 일은 오히려 드물다. 그래서 훈련도 그 사이의 시간을 넣어 둔 것이다.
낱말들 사이에 연상할 거리를 넣어 둔 것도 같은 이유다. 묶어서 담는 방식을 자연스럽게 쓰게 된다.
이 훈련은 임상에서 쓰는 기억 검사(TOMM, 상황기억 검사) 방식을 응용해 만들었다.
말로 풀어 놓은 것보다 한 번 보는 편이 빠르다. 실제 화면은 이렇다.
두칭 유튜브 · 기억력 훈련 '순삭단어' — 2022년 제작이라 지금 앱 화면과 다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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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10분이 남기는 것
이 훈련을 이어 가면 성적이 대체로 오른다. 무엇이 남는지도 분명하다.
두 가지다.
첫째, 머리를 쓰는 시간이 하루에 생긴다. 은퇴 뒤에는 기억하고 셈하고 말을 찾는 일이 좀처럼 생기지 않는다.
둘째, 내 상태를 눈으로 확인한다. 어제와 오늘, 지난달과 이번 달을 견주어 보는 일 자체가 관리의 시작이다.
기본반과 실력반
단계
이런 분에게
무엇이 다른가
기본반
처음 시작하는 분
낱말 수가 적고 시차가 짧다
실력반
기본반 최상위에 오래 머문 분
양이 늘고 시차가 길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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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반과 실력반
두칭은 같은 훈련을 기본반과 실력반으로 나누어 둔다.
실력반에는 기본반 최상위 단계에 올라 레벨이 더 떨어지지 않는 분이 들어간다.
굳이 나눈 이유가 있다. 너무 쉬우면 머리를 쓰지 않고 지나가고, 너무 어려우면 답답해서 그만두게 된다.
조금 애써야 닿는 자리에 있을 때 이어 가기가 가장 수월하다.
그래서 두칭은 훈련 중에도 성취도에 따라 난이도를 조절한다. 같은 사람이라도 그날 컨디션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잘 안 되는 날이 있어도 괜찮다. 떠올리려고 애쓰는 그 과정 자체가 머리를 쓰는 일이다.
기억을 붙잡는 힘은 쓰지 않으면 무뎌진다. 반대로 매일 조금씩 쓰면 오래 간다.
성적은 기억 영역으로 모아 보여 주고 같은 연령대 평균과 나란히 놓아 준다.
진단을 받고 나서야 서두르는 분들을 자주 뵌다. 그전에 조금씩 해 두면 훨씬 수월하다.
오늘 십 분이면 된다.